나이 많은 개발자가 새로 취업하면 겪게 되는 일

동료와의 관계

40대 후반의 나이면 보통 회사에서 차장, 부장 정도의 위치에 있으며 자신이 이끄는 팀이나 부서가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개발 회사는 좀 다른 조직 체계를 가진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 얼추 비슷하다.

내가 새로 입사한 회사도 물론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개발팀이 있었고 개발팀장이 있었다. 나보다 10살 가량 어린 팀장이었는데 입사 첫날부터 같이 점심도 먹지 않을만큼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고 다녀 나를 무척이나 난감하게 만들었다.

또래도 아닌 10살 가량이나 많은 팀원, 거기다가 자신이 뽑은 팀원이 아닌 회사 간부가 꽂아 넣은 낙하산 팀원 (이전글 참고), 혹시나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아마도 불편한 감정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당연히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은 되지만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미안해야 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 별 수 없었다. 그냥 버티며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랄 수 밖에. 나 역시 힘들다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였기에.

사실 회사의 조직 체계상 팀에 소속되긴 했지만 내가 맡은 업무는 독립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일로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사람 사는게 그럴수 있나.. 어렵지만 그래도 가까워져야 뭐든 순리되로 진행될 터인지라 내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력이라는 거는 사실 별거 없다. 끊임없는 스킨십이 답이다. 먼저 다가가서 말 걸고, 술자리 같은데는 빼지말고 좀 뻘쭘해도 꿋꿋하게 참여해서 자꾸 마주하는 거다. 꾸준히 밥정과 술정을 쌓다보면 어느 순간 나를 대하는게 많이 편해진 걸 느끼는 순간이 온다. 물론 이곳에서도 그랬다. 좀 오래걸리긴 했지만. 한 반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나이와 경력에 맞는 역할

같이 밥먹기, 같이 술먹기, 같이 담배피기 등의 아주 평범한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어려웠던 일상이 좀 자연스러워지고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이 되기 시작할 무렵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조직에서 아무 욕심없이 그냥 주어진 개발 일만 하고 싶었지만 조직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점점 나이와 경력에 맞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는데 뭔가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요구하는 것은 있는 느낌? 조금씩 나에게는 압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진 기술이 필요하여 채용을 했지만 원하는 것을 모두 얻고 난 후에도 나를 계속 사용할 이유를 내가 증명해 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 틀린 상황은 아니다. 어느날 불쑥 들어온 늙은 이방인이 한 회사에서 10년, 20년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과 섞이려면 당연히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단, 나에게도 회사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말이다.

퇴사

결국 난 퇴사를 선택했다.

3년 만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래도 막연하고 대책 없었던 3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취업은 더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며, 나이가 많은 개발자가 취업을 할 때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해졌고 결국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나도 아직까지는 좀 더 개발자 생활을 해도 문제는 없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는 많고, 창업도 어렵고 취업도 어렵다면 답은 하나다. 프리랜서 개발자. 창업과 취업 사이의 절충안이다.

회사도 부담없고, 나도 부담 없다. 오로지 개발 업무다. 그거면 된다. 더 기대할 것도 없고 더 해줄 필요도 없다. 딱 거기까지 아주 깔끔한 관계이다.

구인/구직 사이트 프로필에 3년 간의 개발자 생활을 업데이트 시켜놓고 계약직도 체크해 놓았더니 3년 전과는 다르게 제안이 제법 많이 왔다. 그렇게 시작한 프리랜서 생활이 벌써 5년이 넘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글에는 좋은 일감을 구분하는 법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이 많은 개발자가 새로 취업하면 겪게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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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백: 50대 개발자, 현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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